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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작품에 관하여-나카하라 유수케ㅣ미술평론가     2007/08/03
하종현의 작품에 관하여-나카하라 유수케ㅣ미술평론가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70년대 중반 무렵의 일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많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얻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알게 된 미술가들의 대부분은 1975년에 조직된 (에콜드 서울)전에 초대된 작가들이었다. 평론가인 이일은 이 미술가들을 '70년대의 작가들'이라고 일컬은 적이 있는데, 그의 표현에 의하면 내가 만난 미술가들은 '70년대의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셈이 된다.


하종현도 이러한 미술가의 한 명이었다. '70년대의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모두가 획일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폭과 범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특히 작품에 있어서는 그 폭과 범위를 관철시키며 그들의 공유하고 있는 뚜렷한 성격이 보여졌다. 그것은 화면과 평행을 이루며 확장되어지는 공간에의 집착과 화면에 대한 수직 방향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제어하려 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색채에 있어서는 단색으로 보여지는 톤, 특히 '흰색'이나 '검은색'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군이 대부분이었던 점도 눈에 띄는 성격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작품들 중에서, 위에서 말한  폭과 범위의 한정된 의미로 부터 불거져 나온 듯한 다른 감각을 지닌 작품이 있었다. 색채의 톤은 갈색 계통의 단색이었으나, 그 작품 만큼은 화면에 대한 작가의 수직 방향에의 관심이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하종현의 그림이었다. 그의 그림은 단단히 당겨져 있는 마직포의 뒷명으로부터 앞면의 방향 쪽으로 물감을 밀쳐내는 듯한 기법으로 제작 되었다. 물론 화면에는 물감에 의한 독특한 촉감이 형성되어지나. 그 물감의 촉각음 화면에 대해 '수직' 방향에의 움직임을 조용히 숨기고 있는 듯하다. 작품을 보면서 잘 묶여진 대나무에 흙을 다지듯이 집어넣어 만든 단순한 흙벽을 연상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아마도 하종현은 색채로서의 물감이 아닌 물질로서의 물감의 실태에 관심을 보여 물질의 물감이 나타내는 형상을 중시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물감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손에 의한 직접적인 행위를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물감의 물질성'에 대한 하종현의 관심과 태도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안에서 조금도 배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하종현의 작품에 커다란 변화가 보여지게 된다. 그것은 이전의 화면에 대해 수직 방향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평행하는 방향에의 관심이 부가되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면의 질감이 빚어내는 수직방향에의 움직임이 완전히 소거되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수직 방향에의 움직임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화면에 평행하는 방향의 움직임을 부과함으로써, 하종현의 작품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 독자적인 양식을 새롭게 형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수평과 수직 방향에의 움직임의 가산은, 화면의 촉감으로부터 느껴져 온다. 화면의 물감은 이것 역시 손에 의해서 각인 되어진 '띠'의 상태, 혹은 '선'의 상태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흔적에 의해 화면 전체가 뒤덮여, 그 흔적이 몇 겹이고 겹쳐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한 흔적은 화면을 따라 드러나고 있으나 흔적의 겹쳐진 층층들은 질감의 입체성을 인상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작품에 있어서도 하종현이 무엇보다도 소중히 물감이 갖는 물질로서의 형상을 그의 작품 세계의 근본에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그러한 모든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그려진 것은 아니다.


하종현의 '물감과 손'의 관계는 어쩌면 도예가의 '흙과 손'의 관계에 가까울지 모른다. 물질로서의 물감은 시각적인 효과보다도 촉감적인 효과에 의해 미술가와 관련되어졌다. 하종현이 그의 작품의 제목을 일관하여 <접합>이라는 단어로 응축시키고 있는 이유를, 적어도 내가 해석하는 관점에 있어서는, 물감과 손의 일체라는 의미로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과 물질은 무엇보다도 '소박'하게 '접합'되어지고, 그러한 근원적인 상호 관계를 유지시키려고 하는 그의 욕구가 작품의 원동력은 아닐런지? 그것 자체가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나로서는 이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많은 것을 설명할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하종현의 작품에 우리들의 감성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포함되어져 있는 사실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점에 매료당할 수 밖에 없는 알 수 없는 '힘'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1990년)
 On Ha Chong-Hyun's Painting-Nakahara Yusuke l Art Critic
 Art World of Ha Chong-Hyun-Edward Lucie-Smith l Art Critic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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