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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작품세계-이경성ㅣ전 국립현대미술관장     2007/07/30
하종현의 작품세계-이경성ㅣ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하종현의 작품 세계는 확실히 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와같은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작품에 이루어진 미적 성과에서도 오는 것이지만, 재료나 그 재료를 다르는 기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쓴 역사는 불과 500년밖에 안된다. 그동안 인류는 미적인 의식이나 사상, 감정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러기에 미술의 역사는 곧 재료의 역사이고, 표현 기법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대 사람들이 평면위에다 사상을 남기기 위해서 동굴 벽화나 암각화 같은 것을 남겨 놓은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또한 고대로 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모자이크나 벽화 같은 것으로 그들의 미적인 개념을 정착시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자 마침내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서 그림 물감의 발명과 더불어 캔버스나 판자위에다가 그리는 이른바 페인팅이 생기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동 가능한 화폭이 생기고 그 화폭에 건조가 빠른 재료를 발견함에 있어서 회화는 장족의 발달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회화의 역사가 불과 500년밖에 안 되는 것은 결국 그와 같은 재료와 기법의 발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500년간 세계의 모든 화가는 잘 짜여진 캔버스 앞면에 그림 물감으로 그리는 것으로써 자기 예술을 완성 시켰다. 물론 2차원적인 평면에다 3차원적인 입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투시원근법 같은 과학적인 이론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미술의 역사는 ,특히 회화의 역사는 평면 위에다 이루어 놓는 온갖 체헙적인 실험의 결과이다. 때로는 평면을 찢거나 뚫어서 투시 공간을 만든다든가 하는 조형의 모험도 이룩했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 하종현은 미술사의 변혁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캔버스의 표면에다 붓으로 형상을 그리는 대신, 특별히 마련한 마태 뒷면에서 유화물감을 밀어내어 마대 사이로 밀리고 삐져나온 유화물감을 도구 또는 손으로 형상을 만들고 표현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유가 정확한지는 확실치 않으나. 화가 하종현은 분명히 미쟁이와 같은 표현 기술을 가지고 있는 , 어떤 의미에서는 미쟁이의 기법을 현대 미술로 전개 시킨 작가인지도 모른다. 원시인이 비에 적은 점토층을 발견하고 거기에다 막대기 또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하종현은 자연이 이룩하는 그 과정을 자기가 스스로 마련해서 그림을 그릴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이것은  긴 인류의 역사에서 본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새삼스럽게 문화적인 행위로 전화시켰다는 점에서 하종현 예술의 특이성을 얘기할 수 있다.


하종현의 작품 세계는 외적으로 단순. 명쾌하다. 그와 같은 단순. 명쾌함이란 첫째는 형태적인 것에서, 둘째로는 색채로 부터 연유한다고 볼수 있다. 그 형태는 혼돈에서 질서를 찾아 헤매는 온갖 조형적 감각의 결과이다. 그것을 형상화시킬 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상으로 조형화 되어 가는 과정은 그야 말로 순수한 추상 충동이다.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에는 일정한 문법이 없다. 다만 곡선을 많이 써서 표현했을 때는 감정의 진폭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직선을 많이 써서 형상을 이룩했을때 그의 심정은 지적이거나 의지적인 때가 많다. 인위적으로 이루어 놓은 화면의 바탕 위에다 소질을 가다듬고 그 위에다 또다시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인류가 평면위에 자기의 감정과 미적 의식을 영원화 시키려던 것과 같은 반복된 행위의 형태이다. 혼돈에다 질서를 준다는 것이 이미 조물주가 행한 해프닝이라면, 오늘날 화가 하종현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해프닝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물주는 아니더라고 그는 조물주에 가까운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또 하나의 창조자인 셈이다.


하종현의 작품에는 보통 얘기하는 암바 계열의 황색과 오커 계열의 청색 그리고 중간적인 존재인 화이트가 전부이다. 색깔을 이렇게 극도로 절제하는 바람에 그의 작품은 어찌보면 지각 변동 이전의 지구의 색깔과도 같다. 지진으로 분출된 지하의 암석이 식어지고, 그 암석이 깨어져서 흙이 되고 하는 지구의 형성 과정을 보는 것과 같은 색깔이 바로 하종현의 그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연의 일치로써 하종현은 형태상 혼돈으로 부터 질서를 주는 성형을 이루었는데, 색채에 있어서도 지구의 가장 원시적인 색채인 땅덩어리의 황갈색과 바다와 하늘의 푸른색을 쓰고 있는 것이다. 황갈색과 청색, 이것이야 말로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기본적인 색채라면, 하종현은 이상하게도 이 두 가지의 색깔로 마무리 하고 있다. 물체가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색깔로 표현함으로써 그는 인간이 생각해낸 온갖 색채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화가 하종현의 작품 세계는 지극히 광물적인 미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혼돈된 점토와 같은 질감에다 황갈색의 그림 물감을 대치시키고 지구의 가장 기본적이고 표준적 색채인 황갈색을 표현함으로써 재질과 감정의 두 가지 이벤트를 성취시키고 있다. 언제 봐도 물리지 않는 형태 감각과 언제 봐도 마음에 뛰어드는 황갈색과 청색의 색감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종현의 작품 세계는 인류 회화 역사를 복습하는 것과 같은 지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994년)
 The Art World of Ha Chong-Hyun
 Ha Chong-Hyun, Concern and Slience-Philippe Dagen-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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