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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원소적 상태로의 회귀-하종현의 근작에 대하여-윤진섭 l 미술 평론가,     2009/12/04
자연의 원소적 상태로의 회귀
하종현의 근작에 대하여

                                    윤진섭 l 미술 평론가, 국제 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I. 동양의 오랜 회화적 전통과의 만남
1970년대의 단색화(Dansaekhwa) 혹은 단색파(Dansaekpa) 작가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을 꼽자면 하종현을 들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독보적인 데가 있다. 1970년대 초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행돼 오고 있는 그의 <접합> 연작은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계에서도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인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는 『1945년 이후의 미술 운동(Movements in art since 1945)』이란 저서에서 “같은 경향의 서양의 작품과는 현격히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It is created in a very different way from western work of superficially the same sort)." 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내려진 이 같은 평가는 매우 합당한 것이다. 루시 스미스도 지적하고 있듯이, 캔버스의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방식인 ‘배압법’은 세계 미술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굵고 튼튼하게 짠 사각의 틀에 거친 마대를 팽팽하게 당겨 부착한 다음 뒷면에서 유성 물감을 밀어 넣는 하종현의 제작 방식은 알다시피 한국의 전통 한옥 공법을 닮았다.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초가집을 지을 때 수수깡을 엮어 벽재를 만드는 방식이 애용돼 왔다. 수수깡을 가로. 세로로 엮어 격자판을 만든 뒤 잘게 썬 짚을 진흙에 섞어 버무린 다음 공처럼 뭉쳐 뒷면에서 밀어 넣었던 것이다. 밖으로 삐져나온 진흙은 송글송글 맺힌 형태를 띠게 되는데, 이때 미장공은 물에 적신 흙손으로 벽을 판판하게 다듬는다.
하종현의 <접합> 연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이 캔버스의 표면에 송글송글하게 맺힌 물감의 알갱이들이다. 마대의 틈을 비집고 캔버스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 물감의 알갱이들은 ‘균질적(all-over)' 으로 퍼져있다. 화면에 고르게 퍼진 그것들은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바탕인 셈이다. 캔버스의 천과 등가의 관계를 지닌 이 물감의 알갱이들을 상대로 하종현은 페인팅 나이프나 붓 혹은 특별히 고안된 나무 주걱을 이용해 행위의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서체를 연상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단순히 무목적적인 ’짓‘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됐던지 간에 일단 행위의 흔적이 드러나면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는다. 이 행위의 흔적과 여백의 관계는 동양의 오랜 회화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II. '배압법‘의 회화사적 의의
한국 단색화 작가들의 화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 ‘균절적’인 특지에 대해 나는 여러차례에 걸쳐 고찰한 바 있다. 그것은 늘 현대 회화에 있어서 ‘평면성(flatness)'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미국의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에 의해 주도된 모더니스트 페인팅의 핵심 개념인 이 평면성이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 일반에 침투 되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와 관련된 비평 작업의 화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일차적으로 하종현의 작업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이 바로 「하종현의 <접합> 연작에 대한 연구-침묵의 메시지」였다.
문화가 지닌 고유한 속성, 즉 접변을 생각할 때, 서구와 한국이라는, 상이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두 문화권이 만나면서 파생되는 다양한 변태는 가치중립적인 측면을 지닌다. 이 말은 소스를 제공한 쪽이나 받은 쪽 모두 우월하거나 열등한 어느 한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화가 지닌 이 스밈과 수용 혹은 짜임과 변용의 관계는 역사 진행에 따르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1970년대에 평면성을 요체로 하는 서구의 미니멀 아트가 유입된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용인의 대상이지 경원하거나 배척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미고, 뒤섞이고, 짜이고 난 뒤 혹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타난 미적 성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 이다.
1970년대 초반 이후에 제작된 <접합> 연작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30여 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한지를 덧씌운 나무판자 사이에 흰색 유성 물감을 모르타르처럼 끼워 넣은 작품인데, 이 작품은 그 이전의 오브제 작품과 그 이후에 주력하는 회화 작품 사이에 중간항으로 존재한다. 이 기년비적인 작품은 앞으로 전개될, 뒷면으로부터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의 시초를 암시하고 있다. 물감이 삐죽 앞으로 튀어나온 형국은 어떤 형태로든 물질감의 현존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종현은 그 후 캔버스의 뒷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런 행위는 곧 기존의 회화적 ‘관습(convention)'을 전복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림은 캔버스의 전면에 그린다(혹은 그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 기존의 관습이었다고 한다면, 뒷면을 주목한 행위는 새로운 방식에 의한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이다.
하종현의 <접합> 연작이 지닌 회화사적 의미는 일차적으로 회화적 관습에 대한 전복에 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오브제처럼 느껴졌던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초기 줄무늬 회화의 두꺼운 캔버스가 던져준 낯설음(alienation)이나, 캔버스 표면을 면도칼로 오려 실제 공간을 보여 준 폰타나의 실험에 비견된다. 그러나 캔버스의 뒷면에 주목한 하종현의 이 행위는 이제까지 온당한 비평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한국 회화사상 본격적인 ‘미적 모더니티’를 획득한 1970년대의 단색화가 기획의 부재로 인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과 무관치 않다.

III, 전위 작가로서의 하종현 - "A.G." 그릅 활동과 그 주변
하종현은 전후 한국 화단을 뜨겁게 달궜던 비정형(informel)회화가 추진력을 잃고 쇠잔해 가던 196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최초의 화집에 수록돼 있는 <무제> 연작은 앵포르멜 화풍으로 그린 것 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화면에 오브제로 실을 부착하는 실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체의 단면, 즉 입술이나 팔의 관절을 연상시키는 이 연작은 암갈색의 칙칙한 색조로 그려져 있다. 입술 모양의 <무제A>(캔버스에 유채,145.5 x 112 cm,1965)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실을 여러 겹 겹쳐 부착한 뒤 채색을 한 부분이다. 이 재료와 형태는 훗날 <탄생 B>(캔버스에 유채, 144 x 193 cm,1967)에 서 보다 정교한 기법으로 발전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과일의 씨앗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전후 최초의 기하학적 작품으로 평가 되는 <도시 계획 백서(White Paper on Urban Planning)와 같은 해에 제작된 이 작품은 화려한 색채의 계조(gradation)와 동일한 패턴의 기하학적 배열, 그리고 캔버스 천의 절단에 의한 직조 기법이 돋보이는 매우 정교한 작품이다. 훗날 공간미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그가 얼마나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인가 하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어 흥미롭다.
앵포르멜 화풍의 작품을 제작한 기간이 잠시라면, 기하학적인 작품의 제작은 좀 더 길게 지속된다(1967-1969). 하드 에지를 비롯한 기하학적 추상과 관련시켜 볼 때 하종현의 강한 인상은 이 이련의 실험과 관계가 깊다.
실험 내지는 전위 작가로서 하종현의 면모는 1969년에 발족한 “A.G."그릅의 활동에서 본격화되기에 이른다. 전후 한국 현대 미술에서 이 그릅은 ‘ 아방가르드’라는 명칭이 말해 주듯이,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전위를 표방한 최초의 그릅이었다. 미술 평론가들의 동인 참여와 함께 기관지 발간, 선언문 발표 등 전위적 활동에 필요한 요건을 갖춘 이 그릅에서 그는 회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1969년에서 1974년에 이르는 기간은 하종현에게 있어서 여러 재료의 물성을 실험허는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성행했던 일본의 ‘모노하(Mono Ha)' 활동이 『미술수첩』이나 『미즈에』등의 잡지와 이우환의 왕래를 통해 소개되던 때로서 한국의 미술계가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한국 실험 미술은 여기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었다. 하종현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나무상자 등의 재료를 중심으로 한 하종현의 오브제 및 설치 작업은 당시 유행하던 개념 미술 혹은 모노하 작업과 그 발상 면에서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의 물성에 탐구는 내가 「하종현의 <접합> 연작에 대한 연구」에서 분석한 바 있듯이,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비의 등식이다. 이러한 특질은 솜과 같은 부드러운 사물과 철사 같은 강하고 질긴 성질을 지닌 사물과의 대비를 통해 나타난다. 배달된 신문 더미와 인쇄가 안 된 신문 용지 더미 간의 대비, 화장지의 부드러운 성질과 둥근 골판지 심과의 대비, 딱딱한 기둥과 부드러운 석고 가루 더미간의 대비 등등 사물의 다양한 물성에 대한 탐구는 여러 오브제 및 설치 작업을 통해 표출 되었다. 결과적으로 하종현이 기울인 물성에 대한 관심은 1974년에 비롯되는 예의 ‘배압법’에 의한 캔버스 작업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의 <접합> 연작이 지닌 물성적 측면은 이처럼 다양한 사물의 물성에 대한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IV. <접합> 연작과 ‘배압법’의 태동
일련의 실험기를 거친 뒤, 하종현은 드디어 회화로 복귀한다. 1974년 무렵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그는 흰색 유성 물감을 모르타르처럼 한지로 감싼 나무판자 사이에 삽입하는 실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실험은 단 한 차례에 그치고, 바로 배압법에 의한 고유의 기법이 시도되기에 이른다. 그의 이 독특한 방법을 한옥의 건축 공법과 관련시켜 해석한 것은, 그의 작업의 의미를 우리 고유의 ‘문화적 자료체’로부터 이끌어 내고자 한 나의 비평적 관점에서 연유한 것이지 그의 발상과 별 관련은 없다.
<접합>의 제작은 특별히 고안된 굵은 나무 틀에서 시작된다. 커다란 나무 틀에 올이 성긴 마대를 팽팽하게 당겨 부착한 다음, 뒤에서 유성 물감을 커다란 페인팅 나이프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런 그의 동작은 마치 숙련된 미장이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마대 천은 캔버스로 옮겨진 뒤에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을 위한 화포가 된다. 그는 물감이 송글송글 맺힌 캔버스의 앞면을 바라보며 작업한다. 그것은 이제 막 바른 흙벽을 연상시킨다. 그는 부드러운 반죽의 상태 그대로인 물감에 페인팅 나이프. 붓. 나무주걱 등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초기에는 물감을 둥근 형태로 밀어 흘러내리게 하는 기법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차 전면적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물감을 성긴 마대 뒤에서 밀어냄으로써 하나의 물질이 자연스럽게 다른 물질의 틈 사이로 흘러나갈 때, 그리고 흘러나간 물질들의 언저리를 느긋이 눌러 놓았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물질 자체가 물질 그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되도록 말하지 않는 쪽에 있고 싶다.”

하종현의 이 묵언의 메시지는 행위의 근저를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즉, 그의 작업에 나타나고 있는 긁기, 훓어내기, 누비기, 밀어내기와 같은 다양한 행위의 양태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몸짓’의 유형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순수한 놀이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V. 근작에 대하여
흰색, 회색, 갈색, 암록색, 암청색, 검정색 등 서로 다른 미묘한 톤의 무채색과 중성색으로 이루어진 하종현의 <접합> 연작은 색에 대한 실험이면서 동시에 물성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행위가 있다. 그는 잭슨 폴록이 회화와 퍼포먼스의 경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물성과 행위의 경계에 머물러 있다. 그의 행위는 비록 캔버스 위에서 미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찍이 구타이(Gutai) 그릅이 진흙탕을 온몸으로 휘젓는 행위를 보여 준 것처럼 캔버스 위의 물감을 휘젓는 원초적 자유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이 작화 방식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치밀하고 섬세한 측면이 있다. 절제와 계산,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아우르는 세련된 감각, 서체인가 하면 기의 없는 기표들만이 화면 위를 수놓고 있다.
근자에 이르러 하종현은 새로운 양식의 실험에 몰두해 있다. 서체적인 스타일의 분방한 행위에서 벗어나 그림의 테투리가 바탕 면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도록 하는 작업이다. 거대한 정방형의 캔버스에 원을 그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 연작은 몇 개의 층위를 지니고 있다. 맨 밑은 생 마대천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다음 층은 위층의 물감에서 배어나온 기름이 가장자리에 번져 있다. 그 위에는 뒤에서 배어나온 물감 층이, 다시 맨 위에는 같은 색깔의 두터운 마티에르를 지닌 물감 층이 튀어나와 있다. 물감의 이 적층 방식은 맨 위층에 존재하는 물감에 쇠솔질을 가함으로써, 이 부분에만 일련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조형 어법을 낳고 있다. 쑥색 혹은 짙은 회색으로 이루어진 이 원 작업은 그의 전 작업 과정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정방형의 캔버스에 원이라고 하는, 어찌보면 기존의 추상 회화의 관례에서 그다지 새롭다고만은 볼 수 없는 이 조형적 실험을 통해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혹시 그것은 이제까지 거침없이 화면을 누볐던 작화 태도에서 벗어나 안정된 화면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의 한 표현이 아닐까?
이 점에 대한 판단은 유보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련의 실험과 병행하여 기존의 화면 구성 방식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밑에 생 마대 천을 그대로 남긴 채 예의 배압법에 의해 화면의 대부분을 검은색으로 채운 뒤 붓으로 드로잉을 한 검은색 작품도 있고, 검정색 유성 물감을 묽게 희석하여 바탕색을 칠한 작품도 있다. 또한 검은색 바탕에 희색을 입히고 지그재그식 붓 터치를 가한 대작들도 눈에 띈다. 연한 회색을 비롯하여 검은색, 흰색등 주로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이 대작들은 바탕을 쇠솔질로 다듬고, 그 위에 존재하는 물감을 커다란 나이프로 둔탁하게 밀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근작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래로 긴 사각의 거대한 캔버스에 역시 같은 형태의 사각형이 비례에 맞게 화면에 자리 잡은 연작들이다. 연한 쑥색과 연한 회색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캔버스의 맨 하단에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이 이채를 띤다. 캔버스의 바탕 면으로부터 돌출된 거대한 직사각형에는 긁힌 쇠솔의 일정한 자취가 지그재그 형태로 나타나 있다.
물감의 적층에 의한 화면의 도드라진 층위는 하종현이 근자에 들어 새롭게 시도하는 제작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마대와 물감, 그리고 기름 사이에서 파생되는 재료들의 길항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여 준다. 마치 앞의 인용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가능한 한 물질 자체가 물질 그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처럼...

앞서 언급한 작가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의 끝을 맺은 바 있다.

“근자에 와서 하종현은 서체적인 느낌의,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서예적인 것이라고는 잘라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빠져 있다. 화면을 종횡으로 누비는 분절된 직선의 자유로운 조합이 이루어낸 이 세계가 향후 그의 작업의 진행 과정에서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를 참고해 볼 때, 근자에 나타나고 있는 작업의 변화는 원초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과 사각형이라는 자연의 원소적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발언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그의 전 작업 과정을 놓고 볼 때 완성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라는 점일 것이다.
 하종현: 벽 위의 흔적들 -로버트 모건: 미술평론가
 On the Non-Pictorial of Ha Chong-Hyun-Lee Yil l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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